“내가 아이를 키우는 줄 알았는데, 아이가 나를 사람으로 키우고 있었다.”
1. “왜 그게 꼭 옳은 거야?” 아이의 질문 앞에 멈춰 선 순간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왜?”입니다.
왜 일찍 자야 해?
왜 인사는 꼭 해야 해?
왜 공부를 해야 하지?
어른인 나는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이의 “왜?”라는 질문 앞에 낯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첫째가 어느 날 문득 묻던 말이었어요.
“엄마, 착한 사람만이 꼭 맞는 거야? 나쁜 사람은 틀린 사람이야?”
순간, 대답을 못 했습니다.
어른의 입장에서 "응, 당연하지"라고 말하려다 문득
이 질문이 단순한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선,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관한 물음이라는 걸 깨달았죠.
아이들은 아직 선악이나 옳고 그름을 나누지 않습니다.
그저 다양한 사람과 사건을 그 자체로 바라보죠.
그리고 그 순수한 시선 앞에서
나의 판단은 너무나 빠르고, 정답에만 집착했던 건 아니었을까 돌아보게 됩니다.
그날 이후 저는 아이의 “왜?”라는 질문 앞에서
성급히 답하지 않고, 함께 질문을 던지며
조금 더 열린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 아이가 가르쳐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
둘째는 성격이 다소 느긋하고, 자신만의 리듬이 확실한 아입니다.
식사도 느리고, 옷도 천천히 입고, 말도 말끝을 흐리며 천천히 이어가곤 합니다.
예전의 나는 늘 속이 터졌습니다.
“빨리 좀 하자”, “왜 이렇게 굼벵이 같아?”
시간이 없고, 일이 쌓이니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어느 날,
둘째가 천천히 외투 단추를 잠그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 지금 되게 예쁘게 잠그고 있잖아. 이게 내 방식이야.”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내 기준의 효율성’으로
아이의 방식과 속도를 ‘틀렸다’고 여겼던 것이죠.
그 순간 저는 아이에게 미안함과 동시에
진짜 배움이 일어나는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방식이 모두에게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
삶은 빠르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도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는 것.
그걸 두 아이가 나에게 가르쳐준 거예요.
3. 진짜 철학은 삶 속에서, 아이의 눈높이에서 나온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래도 되나’ 싶은 순간이 정말 많습니다.
화내고, 후회하고, 다시 다짐하고.
그러다 보면 내가 누구였는지도 잊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런 무너지는 하루 속에서도
아이들은 가끔, 아니 자주
나를 일으켜 세우는 한마디를 툭 던집니다.
“엄마, 오늘 힘들었지? 그래도 잘했어.”
“엄마, 나보다 엄마가 더 고생했어. 내가 안아줄까?”
“내일 다시 하면 돼. 오늘은 우리 그냥 맛있는 거 먹자.”
이 아이들이
내가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삶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이자
내 감정을 위로하고
삶의 속도를 조절하게 해주는
가장 따뜻한 철학자가 되어준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이를 통해 저는 '행복은 결국 관계 속에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해야 한다”는 마음이
철학의 출발점이라는 걸 다시 배웁니다.
결국, 아이는 내 인생의 스승이었다, 육아는 정답이 없다는 말을 우리는 수없이 듣습니다.
그 말은 참이지만,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은 이것 아닐까요?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내가 사람다워지는 방법을 배우는 것, 그게 진짜 육아의 철학이다.
가끔은 버겁고, 가끔은 아이에게 미안한 하루를 보내더라도 그 속에서 내가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조금씩 더 부드러워진다는 걸 알게 됩니다.
결국, 아이를 키우는 일이 곧 나를 키우는 일이었음을 오늘도 다시금 느낍니다.